자연대수 e의 탄생이 궁금합니다.
삶의 지혜 :
2007. 10. 2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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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이며 초월수인 오일러의 수 e
은행에 예금한 돈이 언제 두 배가 되느냐 하는 문제를 풀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꽤 복잡한 수식 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 답은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다.
즉 0.7이란 수를 이율로 나눠 주기만 하면 된다.
만일 연 이율이 14%라면 5년(0.7/0.14=5)이 걸리고 요즈음처럼 이자율이 내려가서 7%인 경우는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면 0.7이란 수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2의 자연 로그인 것이다. 어떤 수의 자연로그는 그 수와 같아지는 e의 지수를 나타내므로, 2의 자연로그는 e0.7 =2에서 0.7이 된다.
오일러의 수(Euler's number)라 불리우는 e는 스코틀란드의 에딘버그 근처에 있는 머치스톤의 영주인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가 1614년에 발견한 것으로 곱셈을 덧셈으로 변환시킴으로 천문학적 수를 계산하는 부담을 엄첨나게 줄어 주었다.
지금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로그와 로그표 및 계산자는 한 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연로그는 확률, 통계, 생물학, 물리학, 탄도학, 공학은 물론 음악을 포함한 예술이나 재정학 등 수학의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 오일러의 수 e 에 대하여 >
e 는 오일러가 처음 정의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오일러가 1736년에 펴낸 Mechanica 라는 책의 60 쪽에 나와 있는 e 의 정의를 살펴보면 '... ubi e denotat numerum, cuius logarithmus hyperolocus est 1" 이라는 문구가 나와있는데 저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e 는 자연로그의 값이 1 이 되는 수이다' 입니다.
지수함수의 역사의 기원은 데카르트(Descartes)의 'Geometrie' 라는 책을 제일 먼저 읽은 F.Debeaune 이라는 사람이 어떤 기하적인 문제를 데카르트에게 편지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어떤 곡선 y=f(x) 를 찾고 싶었는데 그 곡선은 다음의 성질을 만족하는 곡선입니다: y=f(x) 위의 각 점 P 에 대해, P 에서 이 곡선에 접하는 접선과 x 축과의 교점 T 와 P 에서 x 축으로 수선을 내려 그 발을 V 라고 둘 때, T 와 V 사이의 거리가 일정한 값 a 가 된다.
데카르트와 페르마(Fermat)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거의 50년동안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684년 라이프니쯔(Leibniz) 가 위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 내었습니다(이 부분은 그림을 그려가며 읽으시면 좋은데 안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 x 와 y 가 위 문제의 P 와 V 라고 생각하자. 이 때 x 의 값을 아주 작은 b 값만큼 변화시키면 y 는 두 삼각형의 닮음의 성질에 의해 yb/a 만큼 변화한다. 이 사실을 계속 생각하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x, x+b, x+2b, x+3b,.. 일 때 함수값은 (1+b/a)y, (1+b/a)2y, (1+b/a)3y,...이다.
또다른 지수함수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추측되는 것은 오일러가 쓴 1748 년의 책 Introductio 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도시의 인구는 매년 1/30 의 비율로 증가한다. 현재 인구가 100,000 이면 100 년 뒤에는 인구가 얼마나 늘겠는가' 와 ' 어떤 사람이 400,000 프랑(florins?) 을 연이자 5% 로 빌렸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계산을 해야 합니다.
(1+(1/30))100, (1+0.05)N, 일반적으로 (1+s)N 여기서 s 는 작은 수, N 은 큰 수.
이제 오일러는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수 s 를 1/N 으로 바꾸어 놓고 N 이 아주아주 큰 값일 때 위의 식을 계산해 봅니다. 즉 (1+1/N)N 에서 N 을 무한대로 보낸 값을 이항정리의 도움으로 구하는데 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무한급수의 값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1+1+1/(1*2)+1/(1*2*3)+1/(1*2*3*4)+...
오일러는 위의 값이 수렴함을 알고 너무 기뻐했을 것 같은데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후에 사람들은 1+1+1/(1*2)+1/(1*2*3)+1/(1*2*3*4)+... 의 수렴값을 e 라고 쓰고 오일러수(Euler number) 라고 부릅니다.
자연로그와 관련되어서는 브리그스(Briggs, 네이피어(Napier)와 함께 로그를 연구한 사람)는 로그의 발견 당시 밑이 10 인 로그를 주로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밑이 10인 로그값을 중간항 추가법(Interpoliation, 또는 비례부분의 법칙) 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로그표를 계산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카랄리에리(Cavelieri), 페르마는 y=xa 와 x 축으로 둘러쌓인 넓이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페르마는 이러한 도형의 넓이를 거의 모든 실수 a 에 대해서 잘 계산을 했지만 a=-1 일때는 계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레고리(Gregoty 1647) 와 안톤 (Anton 1649) 은 1/x 와 x 축으로 둘러쌓인 면적을 로그(logarithm) 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양수 a 에 대해 자연로그 ln(a) 를 곡선 1/x 와 구간 [1,a] 로 둘러쌓인 면적으로 정의하게 됩니다.
이때 오일러가 자신의 연구와 그레고리, 안톤의 연구를 통합하는 정리를 증명합니다.
은행에 예금한 돈이 언제 두 배가 되느냐 하는 문제를 풀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꽤 복잡한 수식 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 답은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다.
즉 0.7이란 수를 이율로 나눠 주기만 하면 된다.
만일 연 이율이 14%라면 5년(0.7/0.14=5)이 걸리고 요즈음처럼 이자율이 내려가서 7%인 경우는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면 0.7이란 수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2의 자연 로그인 것이다. 어떤 수의 자연로그는 그 수와 같아지는 e의 지수를 나타내므로, 2의 자연로그는 e0.7 =2에서 0.7이 된다.
오일러의 수(Euler's number)라 불리우는 e는 스코틀란드의 에딘버그 근처에 있는 머치스톤의 영주인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가 1614년에 발견한 것으로 곱셈을 덧셈으로 변환시킴으로 천문학적 수를 계산하는 부담을 엄첨나게 줄어 주었다.
지금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로그와 로그표 및 계산자는 한 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연로그는 확률, 통계, 생물학, 물리학, 탄도학, 공학은 물론 음악을 포함한 예술이나 재정학 등 수학의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 오일러의 수 e 에 대하여 >
e 는 오일러가 처음 정의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오일러가 1736년에 펴낸 Mechanica 라는 책의 60 쪽에 나와 있는 e 의 정의를 살펴보면 '... ubi e denotat numerum, cuius logarithmus hyperolocus est 1" 이라는 문구가 나와있는데 저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e 는 자연로그의 값이 1 이 되는 수이다' 입니다.
지수함수의 역사의 기원은 데카르트(Descartes)의 'Geometrie' 라는 책을 제일 먼저 읽은 F.Debeaune 이라는 사람이 어떤 기하적인 문제를 데카르트에게 편지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어떤 곡선 y=f(x) 를 찾고 싶었는데 그 곡선은 다음의 성질을 만족하는 곡선입니다: y=f(x) 위의 각 점 P 에 대해, P 에서 이 곡선에 접하는 접선과 x 축과의 교점 T 와 P 에서 x 축으로 수선을 내려 그 발을 V 라고 둘 때, T 와 V 사이의 거리가 일정한 값 a 가 된다.
데카르트와 페르마(Fermat)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거의 50년동안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684년 라이프니쯔(Leibniz) 가 위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 내었습니다(이 부분은 그림을 그려가며 읽으시면 좋은데 안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 x 와 y 가 위 문제의 P 와 V 라고 생각하자. 이 때 x 의 값을 아주 작은 b 값만큼 변화시키면 y 는 두 삼각형의 닮음의 성질에 의해 yb/a 만큼 변화한다. 이 사실을 계속 생각하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x, x+b, x+2b, x+3b,.. 일 때 함수값은 (1+b/a)y, (1+b/a)2y, (1+b/a)3y,...이다.
또다른 지수함수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추측되는 것은 오일러가 쓴 1748 년의 책 Introductio 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도시의 인구는 매년 1/30 의 비율로 증가한다. 현재 인구가 100,000 이면 100 년 뒤에는 인구가 얼마나 늘겠는가' 와 ' 어떤 사람이 400,000 프랑(florins?) 을 연이자 5% 로 빌렸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계산을 해야 합니다.
(1+(1/30))100, (1+0.05)N, 일반적으로 (1+s)N 여기서 s 는 작은 수, N 은 큰 수.
이제 오일러는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수 s 를 1/N 으로 바꾸어 놓고 N 이 아주아주 큰 값일 때 위의 식을 계산해 봅니다. 즉 (1+1/N)N 에서 N 을 무한대로 보낸 값을 이항정리의 도움으로 구하는데 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무한급수의 값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1+1+1/(1*2)+1/(1*2*3)+1/(1*2*3*4)+...
오일러는 위의 값이 수렴함을 알고 너무 기뻐했을 것 같은데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후에 사람들은 1+1+1/(1*2)+1/(1*2*3)+1/(1*2*3*4)+... 의 수렴값을 e 라고 쓰고 오일러수(Euler number) 라고 부릅니다.
자연로그와 관련되어서는 브리그스(Briggs, 네이피어(Napier)와 함께 로그를 연구한 사람)는 로그의 발견 당시 밑이 10 인 로그를 주로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밑이 10인 로그값을 중간항 추가법(Interpoliation, 또는 비례부분의 법칙) 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로그표를 계산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카랄리에리(Cavelieri), 페르마는 y=xa 와 x 축으로 둘러쌓인 넓이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페르마는 이러한 도형의 넓이를 거의 모든 실수 a 에 대해서 잘 계산을 했지만 a=-1 일때는 계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레고리(Gregoty 1647) 와 안톤 (Anton 1649) 은 1/x 와 x 축으로 둘러쌓인 면적을 로그(logarithm) 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양수 a 에 대해 자연로그 ln(a) 를 곡선 1/x 와 구간 [1,a] 로 둘러쌓인 면적으로 정의하게 됩니다.
이때 오일러가 자신의 연구와 그레고리, 안톤의 연구를 통합하는 정리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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