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뉴스펌]Nvidia의 헤괴한 엠바고 요청을 보며
#1.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가장 큰 실감나는 변화 중 하나라면 '매체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벗겨졌다는 것일 게다. 불철주야 입바른 소리만 외쳐오던 '매스미디어'들이, 실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일개 기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듯 싶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그들만의 구호가 최근 들어 특히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까? 허울 좋은 권위의식으로 무장한 채 발로 뛰기보다는 보도자료만, 전화 확인보다는 인터넷만 애용했던 미디어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 터.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2. 비공개를 전제로 정보를 공개하는 '오프 더 레코드', 시한부로 보도 유보를 요청하는 '엠바고', 비공개 협약을 의미하는 'NDA'가 어느덧 공공연한 일상용어로 자리잡았다.
최소한 매체와 접촉하는 이들이라면 각 용어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즐겨 애용하는 분위기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뒤늦게 '오프 더 레코드'라는 요청이 나오기 일쑤며, 특정 날자를 지목하고 그때 가서야 보도해달라는 요구도 '엠바고'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이뤄진다.
하지만 엠바고와 오프 더 레코드의 의미와 한계를 제대로 알고서 요청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혹여 불이익이 따를 것 같으면 일단 이들 용어를 빌미로 보도를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 용어의 성립 요건을 되짚어봤다.
◇ 오프 더 레코드의 성립 요건은 우선 취재처와 기자가 서로 동의해야 한다. 흔히 일방적인 통보가 이뤄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요청 후 동의가 이뤄져야 성립된다. 따라서 먼저 정보를 제공한 뒤 뒤늦게 필요에 따라 오프 더 레코드를 거는 것은 사후 동의를 얻지 않는 한 효력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자가 직접 목격한 것, 제3자를 통해 확인한 정보의 경우도 오프 더 레코드가 성립되지 않는다. 목격하거나 별도로 취재한 것에 오프 더 레코드를 거는 것은 보도를 제한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누설된 자사의 비밀 등에 보도 제한을 요청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공익에 반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오프 더 레코드가 될 수 없다.
◇ '시한부 보도 유보', 즉 엠바고도 사실 그리 쉽게 성립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요건은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먼저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정보를 제공한 뒤 해당 이유를 함께 설명하며 보도 시간 제한을 요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공연히 떠도는 정보나 직접 취재한 정보를 회사나 기관의 사정으로 엠바고를 요청하는 것은 자신들의 입맛에 맛는 정보만 노출시키겠다는 요구와 마찬가지다.
그 밖에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쌍방 동의 없는 일방적인 엠바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은 포괄적인 엠바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이유로 하는 엠바고 등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3. 엔비디아가 최근 주요 IT 인터넷 매체에 보낸 엠바고 요청은 이런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엔비디아는 3일 e메일을 통해 "엔비디아가 공지한 엠바고 날짜 이전에는 상기 제품에 대한 어떠한 형식의 리뷰나 관련 내용, 사진, 이미지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드립니다. 해외 하드웨어 사이트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기사화 하는 것을 포함하여, 엠바고 이전에 공개되는 모든 기사 및 포스팅은 각 벤치마트 사이트의 이름으로 본사 최고 매니저에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에디터스 데이 등 향후 본사에서 진행되는 여러 이벤트 및 마케팅 활동 참여 매체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신제품과 관련한 모든 뉴스는 4월 18일(수) 0시(한국시간) 이후에, 제품 리뷰는 4월 19일(목) 0시(한국시간) 이후에 포스팅하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자사의 제품 발표일 전에 미리 정보를 누출하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항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자사의 제품에 대해 무분별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막고자한 본사차원의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엠바고의 성립 요건에서 적극적 정보 제공 행위가 빠져 있음은 물론, 일방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점, 자사의 사적인 방침일 뿐이라는 점에서 저촉된다.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미디어가 독자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 일방적으로 엠바고를 요청하고, 나아가 이를 어길 시 미디어 관련 비즈니스와 연결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미디어들을 자사의 방침에 맞춰나가겠다는 의도와 다름 아니다.
사실상 취재 및 보도 행위에 제한을 건 것이며, IT 미디어의 콘텐츠 선택과 편집을 자사의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따름이다.
더욱이 엔비디아가 관련 시장에서 독보적인 수위를 질주하고 있고, 이에 따라 그 뉴스 가치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주요 기업이라는 점에서 사실은 더 우려스럽다. 콘텐츠를 발굴해야하는 미디어 입장에서 엔비디아는 필수적인 뉴스를 공급하는 핵심 기업이며, 매체들 간의 경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취재원이다. 이번 경고(?)가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렇듯 불편한 사태가 엔비디아의 책임일까? IT 미디어, 특히 벤치마크 사이트들 스스로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엔비디아의 실수는 있었을지언정 책임 소재는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책임은 인터넷 매체에게 있다. 업계와의 상생을 빌미로 최소한의 원칙도 지켜오지 않은 탓이다. '독자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라는 단어를 공허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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